히로시마로의 여행: 기억에 대한 명상

글쓴이: Lorena Rodríguez

이번 주에는 ‘집단기억’과 역사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되새기게 해주는 한 로타리 평화 펠로우의 히로시마 기행문을 소개합니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제3자의 시각에서 우리에게는 익숙한 아픔이 되어버린 역사의 이면을 바라보는 젊은 저자의 명상을 통해, ‘평화’ 실현을 위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보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합니다. <역자 주>

지난 3월, 히로시마 로타리클럽의 지원으로 국제기독교대학의 동료 로타리 평화 펠로우들과 함께 히로시마를 여행할 기회를 얻었다. 우리 일행은 1945년 원폭 생존자들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돌아보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히로시마는 이미지와 미술, 건축물, 문학은 물론 원폭을 직접 겪은 ‘생존자’들을 통해 그 기억을 전하고 있는 도시이다. 이러한 기억과 마주하면서, 나는 평화와 기억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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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평화기념공원에 자리한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커다른 거북이 형상의 받침대 위에 서 있는 위령비에는 2,500명이 넘는 한국인 원폭 희생자들의 이름과 함께 “죽은 자들의 영혼이 거북의 등을 타고 하늘로 오르다”라는 기원문이 새겨져 있다. 위령비 자체는 재일 한국인들에 의해 1970년에 만들어졌으나 공원 안으로 이전될 수 있었던 것은 1999년에 와서라고 한다.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의 10% 이상을 차지한 한국인들이었음에도 불구, 원폭 전후에 걸쳐 일본에서 차별대우를 받았을 뿐 아니라 오랜 세월 제대로 추도조차 되지 못한 것이었다.

위령비를 보며 나는 ‘집단기억’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일본 내에서, 원폭에 대한 역사 및 사회적 서술에 한국인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이 일본 사회에서 겪은 고난은 물론 전쟁 후 잿더미 속에서 나라를 재건하는 데 기여한 바는 더더욱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의 공원 안에 위치한 이 한국인 위령비처럼, 다양한 삶의 자취를 다양한 방식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갈등 속에 숨겨진 우리의 공통된 정체성을 발견하고 서로간의 관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는 열쇠가 되어줄 수 있다.

원폭의 끔찍한 상처를 간직한 채 아직도 새로운 가지와 잎을 돋아내고 있는 히로시마의 은행나무처럼, 이 위령비도 기억의 매개체로서 실제 생존자들이 모두 사라진 뒤에도 계속해서 히로시마의 이야기를 전할 것이다.

나는 콜롬비아 출신 로타리 평화 펠로우이다. 내 모국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지닌 히로시마를 여행하면서, ‘기억’이란 역사의 렌즈로 조명했을 때 쉽게 판별되지 않는 ‘구조적 폭력’을 드러내어 주는 열쇠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구조적 폭력은 개개인의 도덕성과는 무관하게, 혹은 이에도 불구하고, 불의와 억압의 사회적 역학관계를 양산할 수 있다. ‘기억’은 우리가 몇몇 사람의 개인적 노력을 넘어 사회 전체 차원에서 대화와 공동체를 지향해 나아가야 함을 상기시켜준다.

히로시마를 방문할 기회를 열어준 히로시마 로타리클럽에 깊은 감사를 전한다. 그곳에서의 체험은 평화와 생명력에 대한 나의 생각을 변화시켰으며, 앞으로 평화의 사절로서 널리 공유해야할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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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로의 여행: 기억에 대한 명상”에 대한 2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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